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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19일



'왜 알려줘도 자꾸 잊어버리는 거야. 넌 알려줘도 알려준 보람이 없어.'

'미안해. 나도 모르게 자꾸 잊어버리게 되네….'


발자국을 남기고 지우고. 다시 또 남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바다와 모래사장처럼 내 머리도 그러했다. 친구는 발자국이고, 내 마음은 발자국을 지우는 파도다. 철썩철썩 자꾸 파도를 치게 만드는 바람이 참 무심하기만 하다.

친구에게 내 마음도 드디어 설레이는 때가 온 것 같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말을 하기 위해 술 세 병을 내리 마시고 '겨우' 입을 연지 462일째. 휴대폰 메뉴의 끄트머리에 디데이 어플을 깔아 놓았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를 난 인식할 수 있다. 디데이의 시작 날짜는 길고 긴 고백을 했던 그 날이다. 

그날의 시간들은 50일이 100일로, 100일은 1년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1년하고도 97일이 지났고, 이제 3일만 더 지나면 1년하고도 100일을 맞을 것이다. 마침 '띵동'하는 소리와 함께 디데이 알람이 울린다. 그렇게 오늘은 어제가 되었고, 462일은 463일이 되었다.

그 '바람'같은 사람은 매일 '발자국'을 남기는 친구가 소개해준 사람이다. 재밌는 거 함께 해보자며 만났다. 알게 된 지 2년하고도 반이 지난 지금. '바람'은 함께 날아다닐 수 있는 '민들레 씨앗'을 갈망하지만, 묵묵히 찬바람만을 내뿜는다. 주변의 구름들에게 물어보니 원래 유난히도 찬 바람이란다. 내가 그 기류를 함께 탈 수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난 소리 없이 바람의 흐름을 따라다니고 싶어하는 파도일 뿐이고, 바람은 항상 해왔던 일만을 묵묵히 하고 있다.

그 묵묵한 바람과 최근에 카톡을 했다. 구름들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바람은 그 구름과는 친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바람의 '그 구름은 어떤 구름이냐'는 질문에 난 '정말 하얗고 하얀 흰 종이같이 투명한 구름'이라고 했다. 내 말의 의도를 이해한 것인지 바람은 웃으면서 더 거센 바람으로 답변에 화답했다. '자신은 어떻냐'며 바람이 반문을 해주기를 원했지만 바람은 곧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버렸다. 만약에 바람이 '나는 어때?'하며 물었다면, 난 이렇게 답했을 거다. '종이는 종이인데, 파란 종이에요. 파란색에서도 좀 짙은 색. 군청색? 짙은 남색? 네이비라고 이야기 해야 할까요? 그 빠져버릴 듯 파랗고 파란 종이에 하얗고 노란 별들을 수놓아보았으면 좋겠어요.' 오늘따라 파도가 짙다. 짙은 파도에 하얀 거품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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