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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없는 노트

5년 전인가 기타를 사면서 같이 받았던 싸구려 기타 스텐드가 수명을 다한 뒤로 갈 곳 없는 기타 두 대는 짐이 없는 벽 쪽에 조심스레 세워져있다. 망가진 스텐드에 일렉기타를 엉성하게 세워놓았다가, 새벽에 자는 도중 강타당한 기억이 있어서다. 통기타 역시 책상에 비스듬히 세워놓았는데, 금방 째쟁-하고 현 여섯개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번뜩. 벌써 3일이다. 스파게티를 볶고 와인을 따라마신 후,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1일의 종이 울렸다. 새해부터 눈 펑펑 쏟아지던 날. 눈과 함께 흐려진 하늘은 한강 건너편의 건물들도 보이지 않게 내 눈을 가렸고 그저 날이 밝아가는 풍경만 멍하니 앉아 구경했다. 어설프게나마 천장을 가린 천막 아래 의자에서 연기 솟아나는 얼그레이티와 함께. 날이 '밝아옴'을 구경하고 느즈막히 근도리네 집에 들어와 자고 일어나니 어느덧 네 시. 눈은 그칠 줄을 몰랐고 서울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 바로 앞에 있는 창문에 눈을 맞췄다. 눈 앞에서 눈들이 톡!하고 박혀  꼬물꼬물 사르르르 녹아내리는 풍경들. 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는 따뜻한 곳에 있다. 얼른 전기장판으로 올라가 차가워진 몸을 다시 녹여야겠다. 꼬물꼬물. 사르르르.


2013.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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