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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길의 뒷편에는 63빌딩의 끄트머리가, 길의 앞편 언덕을 넘으며 보이는 곳에는 남산타워가. 높은 곳에서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내가 크다 못해 거대한 장소에 덩그러니 남겨진 듯한 느낌이 든다. 처음 서울이란 땅을 밟을 적에 느꼈던 도시의 느낌. 높고 높은 빌딩 숲들이 만들어낸 도시의 느낌이 나를 안으려는 듯하다. 면허를 따면 강변북로의 서쪽부터 맨 끝 동쪽까지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고 말을 했을 때가 떠올랐다. 오른쪽에는 끝이 없이 펼쳐질 것 같은 한강과 반짝거리는 수많은 다리들. 왼쪽에는 빽빽한 아파트 숲을 지나 그 뒤에 가리워진 더 빽빽한 산 위 자그마한 동네들. 옆엔 반짝거리는 남산타워. 다들 살고 싶어한다는 비싼 아파트 뒤에 가린 다닥다닥 조그맣게 둘러있는 집들이 보이는 상황이 참 오묘했다. 가리고 싶지만, 가릴 수 없는 삶과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조용히 흐르는 한강. 서울의 앞과 뒤를 다 보여주는 것 같은 풍경이 흘러 넘치는 곳이다. 이 동네도 비슷해보였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상징이 다 보이는 거리.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시장과 붙어있는 주택들. 그 사이에 솟아있는 아파트.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바로 용산역이다. 약 3년 전 그 삶의 치열함이 흐르고 흘렀던 그 곳이 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 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사라져버린 그 곳은 또 다른 삶의 터전이 아닌, 황량한 유료 주차장이 된 채 방치되어 있다. 그렇게 급하게, 사람들을 쫓아내야 했을까. 비를 맞으며 삶의 조각들이 깨져버린 3년 전의 기억이 지금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한강은 여전히 고요히 흐르고, 도시는 숨이 가쁠 정도로 발 빠르다. 


2012.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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